1. 신석기시대 칭다오는 동이족이 번성한 주요 지역 중 하나였으며, 풍부하고 다채로운 대원구 문화, 용산 문화, 웨시 문화를 남겼습니다.
2. 은나라와 주나라 시대에 칭다오는 중국 천일염의 발상지였으며 중국의 “4대 고대 소금 지역”이자 “5대 고대 항구” 중 하나였습니다.
3. 춘추전국시대에 칭다오는 산둥성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지모를 설립했습니다. "지모고성"(핑두시에 있음)은 현존하는 최초의 고대 도시 유적입니다. 중국에서.
4. 진시황은 중국을 통일한 후 다섯 차례에 걸쳐 세계를 순찰하고 랑야(청도 황다오구)를 세 차례 방문했다. 기록에 따르면 중국 최초의 해상 항해인 서복의 한국과 일본을 향한 동쪽 항해는 랑야에서 출항했다고 합니다.
5. 한나라의 무제는 소년시절 부기(성양구)에서 교동왕을 지냈다. 그는 중국 역사상 가장 많이 칭다오를 방문한 황제였다.
6. 당송 시대에 칭다오는 남북 해상 운송을 연결하는 '환승역'으로 중국 북부 해안의 가장 중요한 운송 허브이자 무역항이 되었습니다. 송나라 시대에는 대외 무역을 관리하기 위해 반교진(자오저우시 내)에 특별히 '사시 운송 부서'가 설치되었습니다.
7. 원나라 때 바다를 통한 곡물 수송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산동반도를 관통하는 중국 유일의 해상운하인 자오라이 운하를 팠다.
8. 명청 시대에 칭다오는 중국 북부의 중요한 해안 방어 요새였으며 산둥 성 라이저우(Laizhou) 주에 속했습니다.
9. 청나라 광서제 17년(1891년) 6월 14일, 청 정부는 교오에 요새를 쌓고 칭다오를 건설했다. 청나라 광서제 23년(1897년) 11월 14일, 독일이 '거예사절사건'을 빌미로 칭다오를 침공, 점령하고 칭다오는 식민지가 되었다.
10. 민국 3년(1914),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일본이 독일 대신 칭다오를 점령했다. 중화민국 8년(1919년), 중국은 칭다오 주권 회복을 계기로 중국 근현대사의 분수령인 '5·4운동'을 일으켰다. 민국 11년(1922년) 12월 10일, 중국 북양정부는 칭다오를 탈환하고 상업항구로 만들었다.
11. 민국 18년(1929년) 7월 국민정부가 칭다오특별시를 설립하였고, 1930년 칭다오시로 개칭하였다. 중화민국 27년(1938년) 1월, 일본은 다시 칭다오를 침략하여 점령했다. 민국 34년(1945년) 9월, 국민정부가 칭다오를 점령하고 칭다오는 특별시로 남았다.
12. 1949년 6월 2일, 칭다오는 중국 북부의 마지막 해방도시가 되었고, 산둥성 직할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