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해석:
씨앗을 뿌리려는 느낌이 있으면 원인과 결과가 다시 살아납니다. (당신이) 당신의 감정을 사용하여 일을 하십시오 ( 땅에 원인이 있기 때문에), (땅에 원인이 있기 때문에) ) 원인이 열매를 맺게 됩니다.
감정도 없고, 씨앗도 없고, 성별도 없고, 탄생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본질은 공허함입니다) 사랑도 없고, 씨앗도 없고, 섹스도 없고, 탄생도 없습니다.
번역:
희능이여, 비록 당신은 이미 당신의 성품을 보고 부처가 되었으나.
하지만 앞으로도 되돌리기 쉽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본성을 숨기지 마세요.
모든 일에 있어서 자신의 감정을 따를 수는 없습니다. 떠나면 감정의 수렁에 빠지고 상황에 따라 변하게 된다.
상황에 따라 변하면 원인과 결과를 심은 만큼 원인과 결과가 생긴다. 원인과 결과 모두 당신이 육도(六道)에 사로잡혀 있다면 당신은 더 이상 깨달은 사람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한 순간에 생겨나고 사라지며, 원인과 조건의 조화로 생겨나고 사라지고 흩어진다.
그러므로 깨달은 사람은 열반(涅槃)에 빠져 있으며 존재도 공(廣)이고 공(存)도 공이다.
구체적인 감정이나 종, 본성, 생명 등에 대해서는 말씀하신 대로 그 본성이 '원래는 무(無)'입니다.
첫 번째 문장은 모든 중생이 성불의 씨앗을 심기 위해 이곳에 온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문장은 보리의 씨앗에서 성불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두 문장은 서로 분리되어 있으며, 금강경에 언급된 '그것이 아닌 그것이 이름이다'와 같은 형식에 속한다. 즉, 그것들은 서로 분리되어 있고 분리된 것은 동시에 이중 조명과 이중 덮음, 덮음과 조명은 이중이 아니다. 『수랑가마경』에 “완전한 보살은 아무 것도 없게 한다”고 하였는데, 이는 육조께서 “애초에 아무 것도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세상에는 중생이 씨앗을 심는 것을 막지 않는 것이 없고, 그 원인과 결과가 다시 살아난다.
이 구절의 처음 두 문장은 행동이고, 마지막 두 문장은 무활동이고, 처음 두 문장은 자비와 보편적 구원, 마지막 두 문장은 순수성과 평등입니다. 부처님께서 반야회의 때 수보리에게 “내가 왜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말해야 합니까?”라고 가르친 것과 같습니다. 겉모습에 구애받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습니다. ’ 이것이 바로 부재의 마음이며, 우리가 기억하고 실천해야 할 마음입니다. (징콩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