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경 5년(1800년) 청나라 때 장춘회관이 건립되고, 관장이 임명되는 것이 장춘의 공식적인 설립의 시작이었다. 광서 14년(1888)에 장춘당이 장춘저택으로 승격되었다. 1913년 3월에 장춘현을 장춘현으로 개칭하고 현청을 설치하였다. 장춘시청은 1925년에 설치되었다. 1929년 9월에 시청과 장춘항개발국이 합병되어 장춘시예비청으로 개칭되어 장춘시 수립을 준비하였다. 1931년 9월 18일, 일본 제국주의는 '9·18사변'을 일으켰고, 다음날 창춘은 함락됐다. 1932년 3월, 꼭두각시 만주국은 장춘을 도읍으로 삼고 이름을 '신징'으로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8월에는 '신징특별시'로 변경되어 괴뢰만주국 국무원에 속하게 되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12월 20일 국민당 중앙정부는 장춘시에서 길림성 관할하에 장춘시정부를 설립했다. 1948년 10월 19일 장춘이 해방되었다. 장춘시당위원회와 중국공산당시정부가 군대를 이끌고 도시에 진입했다. 장춘시를 장춘특별시로 변경하다. 북동부행정협의회에 소속되어 있다. 1949년 5월 9일 장춘시정부는 시인민정부로 개칭되어 길림성에 속하게 되었다. 1953년 8월 1일, 장춘시는 동북행정위원회가 대표하는 중앙정부 직할시로 변경되었다. 1954년 8월 1일, 동북행정위원회는 장춘시를 길림성 직할시로 변경하기로 결정했다. 9월 27일, 길림성 인민정부가 길림시에서 장춘으로 이전하고 장춘시는 길림성의 성도가 되었다. 1955년 2월 22일, 길림성 인민위원회는 장춘시 인민정부를 장춘시 인민위원회로 개칭할 것을 지시했다. 1958년 11월 국무원의 비준을 받아 쌍양현, 구대현, 덕혜현, 농안현, 위수현을 장춘시에 귀속시키고 장춘은 시현현제를 시행하였다. 문화대혁명 시기인 1968년 3월 6일 장춘혁명위원회가 설립됐다. 1980년 6월 1일, 길림성 인민정부는 장춘시혁명위원회를 장춘시인민정부로 개칭한다고 통보했다. 1988년부터 1994년까지 국무원은 지우타이현을 지우타이시(현급)로, 위수현을 위수시(현급)로, 더후이현을 더휘시(현급)로 변경하는 것을 차례로 승인했습니다. 1995년 8월 솽양현의 설치가 취소되고 솽양구가 설치되었다. 현재까지 장춘시는 6개 구(난관구, 관성구, 조양구, 얼다오구, 루위안구, 솽양구), 3개 현급시(지우타이시, 위수시, 더후이시), 1개 현(농안현)을 관할하고 있습니다. 행정 건설 패턴. 1989년 2월. 국가는 장춘시를 국가계획에서 특별히 지정한 도시로 승인하고 상당한 성급 경제관리권한을 부여했다. 1993년 7월 국무원은 모든 성 소재지와 시가 더 이상 분리계획을 시행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같은 해 12월 장춘시는 분리계획 시 등록을 중단했다. 최지에 현 장춘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