궈회가 조위를 배신한 주된 이유는 곽회가 사마의에 의해 장군으로 승진했기 때문에 사마의가 권력을 찬탈하자 그는 찬탈자 사마의에 대한 십자군을 포기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궈회(郭淮)는 태원(泰源) 궈씨(郭氏)에서 태어나 동한 말기 평원현(平源縣) 현판사를 역임했다. 그 후 조비가 오관중랑 장군으로 재직할 때 재상의 군사장교 조일령사로 발탁되어 오랫동안 군에 복무했다. 그 후 서방을 정벌한 장군 하후원(夏伯源)을 따르기 시작하여 정군산(丁君山)에서 패하자 남은 병사들을 모아 두희(杜熙) 등과 힘을 합쳐 장화(張貝)를 장군으로 선출하였다. 자신의 재능을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조위(曹魏)가 건립된 후 선양정후(永陽亭) 영주(永州) 태수를 잇달아 역임하고, 진희장군 조진(曹眞)으로 옮겨가 오랜 역사를 썼다. 그가 당시 이렇게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상대적으로 뛰어난 능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하게는 사마의로부터 받은 존경과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마의가 권력을 찬탈했을 때 그는 권력을 찬탈하고 있던 사마의에 대한 십자군을 포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는 조위의 배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