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공주의 세 남편은 조수, 하후포, 위청이다.
1. 첫 번째 남편 : 서한의 건국 영웅 조신의 증손자 평양 이후 조수(조시).
조수(? - 기원전 131년), 예명 시는 쓰수이현(현 장쑤성 쉬저우시 페이현)에서 태어났다. 서한시대 재상 조심(曹信)의 사위이자 증손자, 평양후(平陽侯) 조기(曹絲)의 아들.
평양후(平陽侯)로 봉하고, 양신공주(한무제의 누이)와 결혼하여 태자비(君子)의 칭호를 받아 귀국했다. 질병으로 인한 그의 영지.
2. 두 번째 남편 : 서한 왕조의 건국 영웅 샤후 잉의 증손자 여인 후 샤후 포.
하후포(? - 기원전 115년)는 서한(西汉) 여인후(瑞陰侯)로 하후영(夏后氷)의 증손자이다. 원광 2년(기원전 134년)에 왕위를 계승하고, 과부인 평양공주(平陽皇后)와 결혼했다. 뜻밖에도 왕위를 계승한 지 19년, 즉 원정 2년(기원전 115년)에 아버지의 시녀와 간음하고 범죄를 두려워하여 자살하여 봉건국가도 폐지되었다. Pingyang 공주는 나중에 Wei Qing과 재혼했습니다.
3. 세 번째 남편 : 위청(魏淸), 장평열후(寶平父侯), 위자부(魏子富)의 남동생, 한나라 무제(吳皇), 유철황후(劉治后).
위청(? - 기원전 106년), 예명 중경은 하동현 평양현(지금의 산시성 린펀 남서쪽) 출신으로 서한 왕조의 장군이자 친척이었습니다. 중국에서는 뛰어난 군사 전략가이자 국가적 영웅입니다. 위자부(魏子富)의 남동생이자 한나라 무황후(吳皇后)이며, 사마(大島) 기병대장 화곡빙(胡編庵)의 삼촌이다.
위청은 생애 일곱 차례 흉노를 공격해 하남성을 함락시켜 한무제 시대 한헝전쟁에서 한나라의 승리에 큰 공헌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