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 년
91 년 전 오늘, 1928 년 8 월 30 일 (음력 1928 년 7 월 16 일), 황양계 보위전. "황양계에서 포성이 융성하여 적군이 밤을 새워 도주했다고 보도했다."
황양계 보위전
제 2 차 국내 혁명전쟁 당시 중국 공농홍군 제 4 군이 정강산혁명 근거지를 지키는 전투였다. 황양계는 정강산 북쪽에 위치하여 해발 1300 여 미터, 웅봉이 우뚝 솟아 있고 가파르며, 정강산의 험한 초소 중 하나이다.
1928 년 8 월, 주드는 홍사군 주력을 이끌고 쇼난으로 갔고, 마오쩌둥은 일부 홍군을 이끌고 계동에 가서 홍사군 주력을 맞이했고, 정강산은 소량의 부대만 남겨 정강산 홍군 병력이 허전하게 되었다. 장시 () 두 성의 적들은 아군의 주력을 타고 돌아오지 않을 즈음에 정강산 근거지에 대해 두 번째' 포위 포위' 를 발동하였다.
8 월 30 일 오전, 샹적 제 8 군 제 1 사단이 강강산 상황양계 진지를 향해 맹렬한 공격을 개시했다. 황양계를 지키는 아군 제 31 단 제 1 대대는 당 대표 호영영 () 의 지도 아래 적위대와 군중의 지지를 받아 황양계가 높은 곳에서 높은 곳에 거거거침없는 험난한 지형으로 적과 격전을 벌인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윈스턴, 전쟁명언) (윌리엄 셰익스피어, 윈스턴, 전쟁명언)
지형의 제약으로 인해 적의 병력은 어관대형으로만 올라갈 수 있고, 하나하나 올라가며, 각 병력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격할 수 없다. 그래서 적들은 한 사단의 병력이 있지만, 화선에 쓰이는 최대 병력은 한 대대의 병력일 뿐이다. 홍군은 연달아 한 줄로 최전방에 배치하고, 다른 두 줄은 옆쪽에 숨어서, 기회가 적을 공격할 때를 기다리고 있다.
삼련은 뒤에서 쉬며 연거푸 지전사를 대신할 준비를 하고 있다. 당시 총기 탄약이 부족했기 때문에 전사마다 총알이 서너 발밖에 없었다. 총알을 절약하기 위해 적들은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총을 쏘지 않고 유효 사정거리 내에 갑자기 발포했다. 이렇게 아군은 아침부터 오후까지 쳐서 적의 여러 차례 공격을 물리쳤다.
오후 4 시쯤 적들이 공격을 재조직할 때, 전사들은 남창 봉기 이후 정강산으로 가져온 유일한 박격포를 들어 적에게 세 발의 포탄을 발사했는데, 그 중 하나가 적의 지휘진지에 떨어지고 있었다.
적군은 포성을 듣고 홍군 주력 부대가 정강산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하여 다시는 싸우지 못하고 저녁 안개가 자욱한 기회를 이용하여 도주했다. 이번 전투는 적군 200 여 명을 때려죽였다.
황양계 보위전은 승리로 정강산 전략 기지를 방어하고, 홍사군 주력을 위해 돌아와 적의 두 번째 포위망을 깨고 근거지를 회복하여 조건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