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야동에는 예전에 도시의 다량지(지금의 신화루)에서 발원하여 다양구와 후이셴차오를 거쳐 홍야동으로 흐르는 작은 개울이 있었는데, 절벽에서 떨어져 폭포를 이루었습니다. '홍추이'는 항상 충칭의 주요 명소 중 하나였어요. 나중에 도시의 나무가 베어지고 인구가 증가하면서 개울은 하수구가 되었습니다. 개울은 하수 도랑으로 변했고 홍야는 더 이상 '녹색'이 아닌 하수 폭포가 되었습니다. 전쟁이 시작되자 충칭의 인구는 급격히 증가했고 도시의 중심은 도시의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이동했습니다. 도시 상부의 하수는 홍야동으로 흘러들어왔고, 홍야동에서는 쓰레기를 절벽에 버렸기 때문에 이곳에는 쓰레기 수거인이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또한 동굴은 비바람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왈의 '바커'들의 은신처가 되었습니다.
1940년대에 들어서야 충칭 사람들은 절벽에 도로를 개설하여 도시와 외부를 연결했습니다. 홍야동은 젠장 사원과 종이염강 거리에 인접해 있었는데, 두 곳 모두 부두가 있었고 꽤 번화한 곳이었죠. 그 결과 홍야동 양쪽 절벽 아래에는 해먹이 줄줄이 늘어섰습니다. 흔들리듯 엇갈리게 층층이 쌓인 해먹은 충칭의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