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는 대로 끝까지 쓰고 싶었지만 너무 늦어서 마감 시간을 놓쳐서 시계를 망가뜨릴까 봐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더 이상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이 사라지고 자정 전에 서둘러 세 단어로 된 물의 글을 올렸습니다.
20세기 말, 북경오리를 처음 먹었던 때가 기억납니다. 20대에 불과한 너무 어렸을 때였죠!
정직하게 말하자면 북경오리는 저에게 좋지 않은 첫인상을 주었습니다.
베이징에 가기 전에는 수도 베이징은 제 마음속에서 매우 신성한 도시였습니다. 베이징이라는 단어가 언급될 때마다 고양된 기분이 들곤 했죠. 어렸을 때부터 베이징 땅을 밟고, 천안문 광장의 밝은 오성홍기를 올려다보고, 만리장성의 산들을 멀리서 바라보고, 취안저우에 가서 오리구이를 맛볼 수 있는 기회를 항상 갈망해왔습니다....
1998년, 드디어 베이징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남편이 일주일간 베이징에 출장을 간다고 하면서 저에게 휴가를 내서 같이 갈 수 있겠냐고 물었습니다. 일생에 한 번은 꼭 수도에 가봐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이제 남편과 함께 동행하고, 먹이고 재우고, 숙식을 제공받습니다. 왜 안 될까요? 그래서 저는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베이징에 도착한 후 남편은 심부름을 마치고 우리 둘은 여행에 전념했습니다. 천안문 광장, 자금성, 만리장성, 천단 등 많은 유명 명소에서 우리의 젊은 모습과 웃음소리가 사라졌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기는 정말 평온했고 인생 최고의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외출할 때는 아름다운 경치를 보는 것 외에도 당연히 음식을 즐겨야 합니다. 당시의 제한된 지식으로 저는 항상 유명한 취안주드 로스트 오리가 베이징 요리의 걸작이며 특히 맛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정오, 먹고 마시자는 생각으로 지하철을 타고 첸먼 취안주드 호텔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호텔 문을 들어서자마자 웨이터 한 명이 저희를 막았습니다.
웨이터가 제시한 이유는 이미 저녁 식사 시간이 지났으니 다시 식사를 시작할 수 없고, 저녁 식사는 오후 6시까지만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시계를 봤습니다. 정오가 조금 지났을 뿐 전혀 늦은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이 시간은 광저우의 식당과 찻집에서 가장 바쁜 시간이고, 우리 남쪽에서는 많은 식당과 호텔이 문을 닫지 않습니다. 문 앞에 손님이 있는 한 가게 주인은 손님을 맞이합니다.
요식업에 있어서는 북쪽과 남쪽의 차이가 상당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망한 우리 둘을 보고 웨이터는 옆집에 로스트덕 패스트푸드점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시간이 다 됐어요. 오늘은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내일 계속 쓰도록 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