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은 각각 한반도에서 친독정권을 지원했고, 이로 인해 한반도가 분단됐다.
1950년 6월, 북한은 선전포고도 없이 남한을 공격해 3년간의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7월 7일 유엔은 북한의 공격에 맞서 한국을 지원하기 위해 유엔군을 파견했다. 미군이 장악한 유엔군이 인천에 상륙해 대규모 반격에 나섰다. 10월 25일, 중국 인민지원군은 북한의 요청으로 북한에 파견되어 북한 인민군과 나란히 싸워 연이어 전투를 벌인 끝에 마침내 38도선 부근에서 전선이 안정되었다.
1951년 7월 10일, 중화인민공화국과 북한, 미국 유엔군 대표가 휴전협상을 시작했고, 수많은 협상 끝에 마침내 7월 27일 '협정'이 체결됐다. 1953년. 한국 정전협정으로 인해 오늘날까지 남북한은 분단되었습니다.
추가정보
한국전쟁 휴전 이후 한반도는 오랫동안 정치적 반대와 군사적 대결, 경제적 고립이 이어지는 냉전상태에 놓여 있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북한과의 화해협력 정책을 추진했다. 2000년 6월과 2007년 10월 김대중과 노무현이 잇달아 방북해 김정일과 정상회담을 하고 각각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에 관한 선언'을 발표했다. 이 기간 동안 남북한은 수많은 공식 회담과 일련의 민간교류 활동을 진행하고, 다수의 협력협정을 체결하는 등 남북관계에서 큰 진전을 이루었습니다.
2000년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에서 역사적인 회담을 가졌습니다. 이는 남북 정상의 첫 회담이었습니다. 남북은 분단 55년 만에 회담에서 '북남민주독립선언서'에 서명했다. '북남독립선언서'에서 두 정상은 상호방문에 합의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한반도의 평화와 평등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그해 노벨 평화상도 수상했습니다.
2007년 10월 2일, 노무현 대통령은 38선을 넘어 북한으로 들어간 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회담을 위해 차량으로 평양에 도착했다. 두 나라는 '북남관계발전과 평화번영선언'에 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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