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호 전투 송시륜은 책임이 있다.
88 사단 산재 실패, 송시륜의 유일한 책임은 적을 얕보는 것이다. 장진호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9 병단은 미군과 직접 손을 댄 적이 없다. 미군이 아무리 힘들어도 두 군으로 적의 3 개 연대를 상대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26 군 5 만여 명을 예비대로 하고 전쟁터에서 100 여 마일 떨어진 곳에 두었다.
전투가 시작되자 20 군의 힘만으로는 미 5 단과 미 7 단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26 군에 참전하게 되었다. 영하 20 여 도의 장진호 지역에서는 26 군이 단기간에 예정된 작전 지역에 도착해야 하는데, 전사들의 두 다리만으로 제때에 임무를 완수하는 것은 확실히 어려운 일이다. 당초 26 군을 전쟁터에서 조금 가까운 위치에 두었다면 결과가 더 좋았을 것이다.
장진호 전투는 교훈이 깊어 각급에서 원인을 찾고 판자를 치고 있으며 88 사단 문제가 가장 크고 죄명이 가장 많다. 9 병단 참모장은 워크그룹을 데리고 88 사단까지 조사했고, 결국 88 사단의 5 대 심각한 문제를 열거했다. 결국 사단장 오대림, 정위 공걸, 부사단장 왕해산이 모두 해직되어 대량의 대영급 간부들이 처분을 받았다.
참담한 실패의 원인은 물론 극단적인 날씨 등 객관적인 요인이 있지만 지휘관 측의 문제는 여전히 회피할 수 없고, 심지어 주요 문제까지 있다. 장진호 전역으로 볼 때 송시륜, 장인초, 오대림은 모두 뚜렷한 실수를 저질렀고, 각종 실수의 겹침으로 기존 어려움이 배로 늘었고, 이길 확률은 점점 작아지고, 최종 결말은 매우 괴로웠다.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