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예두아, 배는 건널 수 없다'는 것은 봄물이 저녁에 비를 몰고 온다는 뜻이다. 당(唐)나라 시인 위영무(魏應五)의 『추저우 서계』에서 따온 것이다. 시의 전체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깊은 나무에서 노래하는 꾀꼬리와 함께 한적한 풀밭 개울에 나는 혼자입니다.
봄물은 비가 늦게 와서 빨리 오고, 거친 강을 건너는 배는 없다.
우리말 번역: 나는 시냇가에 자라는 조용한 풀과 깊은 나무에서 노래하는 꾀꼬리를 좋아합니다. 춘물은 저녁비의 급류를 몰고 오고, 강 한가운데에는 무인선만이 오간다.
작품 감상
이 시에 생명력이 있는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는 늘 끊임없이 논의되어 왔다. 옛 주석에서는 이 시가 "아래는 신사, 위에는 소인의 형상"이라고 씌어 있는데, 거기에는 엉뚱하고 쓸모없는 무력한 슬픔이 담겨 있다고 하여 이 시가 정치적인 자양분을 갖고 있다고 믿었으나, 그것을 정당화하기에는 너무 간결하고 서투르다. 어떤 사람들은 "이건 서계류의 한 장면이니 설명이 필요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시에서 드러나는 감정은 모호하고 뻔하다. 서두에서 풀과 꾀꼬리를 언급할 때 시인은 '연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분명한 의미를 담고 있다. 시인은 가난하게 살며 의리를 지키며 높은 곳에 살지 않는다. 마지막 두 문장에는 물살이 세차고 뱃놀이를 하는 유유한 풍경 속에서 쓸데없이 쓸데없는 일종의 무력감과 걱정, 슬픔이 담겨 있다.
시인은 풍경을 감동으로 묘사하고, 그 풍경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좋아하는 풍경과 싫어하는 풍경을 쓰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의 평온함과 슬픔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이 시는 작가의 삶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