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케다 가문이 멸망한 후 타키가와 가즈마스와 노부타다 군의 장군들은 점령지를 분할하기 시작했고, 가이 왕국은 히데타카에게 넘어갔다. 그러나 아나야마 노부군 영지가 가이로부터 몰살된 후, 아나야마 노부군에 대한 보상으로 히데타카의 시나노스와 군이 노부군(코우키 노부나가)에게 이양되었다. 당시 히데타카와 노부군에게 보낸 문서에 따르면 주마 군과 야쓰시로 군의 절반 정도가 노부군이 다스리고 있었다. 노부나가는 4월 10일 노부군에게 편지를 보내 노부군과 히데타카의 땅이 교차하는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논의하라고 두 사람에게 명령했습니다.
히데타카의 거주지는 카이후이다. 그러나 다케다 가문이 대대로 살았던 츠구자키 홀이 불에 타서 단조 곡선이 처음으로 기숙사로 사용되었습니다. 덴쇼 10년 4월 16일 니시군 하네몬의 문서를 시작으로 같은 해 5월 9일 신엔지 영내 정착을 시작으로 히데타카가 신영주로서의 활동을 엿볼 수 있다(가이국고문서, 신엔지 문서).
혼노지 사건 이후 히데타카를 비롯한 동왕국의 새로운 영주들의 지위는 도전을 받았다. 이 사건을 알게 된 다케다 일족 잔당들이 상황을 부추겼고, 카이는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다. 카이를 야망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가신인 혼다 노부토시(Honda Nobutoshi)를 보내 히데타카에게 교토로 돌아가라고 조언했다.
6월 18일, 히데타카는 무력 공격을 받아 살해당했다. 다케다 가문의 옛 대신들을 비밀리에 지휘한 사람은 아마도 이에야스였을 것이다. 히데타카는 56세(미노국의 여러 가문의 계보)였다.